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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동 은  사 랑 이 



징검다리 미술가게 사계전의 봄 전시회인 오월전의 이름은 ‘숨=노동’이에요. 일상이 노동이고 삶이 노동이란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숨어있는 노동을 찾아보려 하지요. 생명을 먹이고 키우는 살림의 노동을 드러내 보고, 소외되고 파편화된 노동을 펼쳐 보고, 부품이 돼버린 노동자의 모습까지 들여다보려 해요. 노동이 노동으로 명명되지 못하는 사회, 하나인 우리가 하나로 묶이지 못하는 현실, 생명을 앗기기도 하는 지금 여기를 가슴 아프게 응시하려고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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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숨=노동전이 우리에게 치유의 손길이었으면 해요. 거울 속 나와 대면하고, 무릎 마주하며 또 다른 나인 상대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고, 어느 결엔가 곁을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는 눈길로 어깨 나란히 하는 우리였으면 좋겠어요. 지친 시간을 보내도 반짝이는 햇살이 위안 하고, 누추한 공간에 깃들어도 노랗고 따듯한 불빛이 하루를 쓰다듬듯이 그런 한 줌 햇살과 불빛으로 만나려 하네요. 부제를  ‘노동은 사랑이야’라고 단 이유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거고 마땅히 행복해야 하니까요. 노동이 노동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자연스러울 세상을 함께 일구어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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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일

2021년 개인전 ‘내일을 살다’전 중에서 다섯 작품이다. ‘하루’와 ‘미러 스치다’는 김천일 작가의 자화상이다. 전철 승강장에 선 모습과 전철 안 유리에 비친 모습을 사진기로 찍은 모습이다. 두 작품 모두 녹색 색조가 특징인데 신선하고 평온하고 생명력 넘치는 색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루의 작업을 마친 화가 노동자의 고단함과 대중교통에서 스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 등 칙칙한 퇴근의 맛이 버무려진 느낌이다.

벽화 작업을 하다가 담배를 피워 물고 담뱃불을 붙여주는 화가 두 명의 등 뒤로 ‘낮달’이 떠 있는 그림 역시 그림 그리기 노동의 화려하지 않은 세계를 보여준다.

‘세월 1’과 ‘세월 2’에는 친한 동료 화가를 담았다. ‘세월 1’은 동료 화가의 작업실에 놀러 가서, ‘세월 2’는 작가의 작업실에 놀러 온 동료를 그렸다. 한 짝은 뒤집힌 슬리퍼처럼 경비아저씨 자세로 앉아 있는 동료의 모습, 역시 맨발에 반바지로 안경마저 벗고 잠이 든 동료의 모습. 가진 게 많지 않고 남은 게 많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은 동료를 그린 그림은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동료가 다리를 올려놓고 잠든 탁자에 ‘보일락 할 때가 눈이 어두워질 때라 온몸으로 보거라 눈을 감어도 보일 때까지 - 백기완’이라 썼다. '길을 걷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림에 대한 화두가 뒷덜미를 잡는', 내일을 사는, 내일을 살아내는, 김천일 작가 자신에게 주는 적절한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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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태

작가는 7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엔 행상하며 삼 남매를 키웠다. 작가 역시 농사일을 거들고 공장에서 일하며 동생들 바라지를 했다. ‘길을 인 여인’은 그런 어머니를 그린 그림이다. 새벽에 떠나 밤이 돼서야 돌아오는 발걸음. 솜을 두둑 넣은 바지를 입고 목수건을 질끈 묶었어도 버선에 고무신 신은 발은 저릴 만큼 시렸겠다. 머리에 인 것은 하늘 같은 목숨이고 산 같은 책임이었겠다.

‘발’과 ‘발 2’도 어머니의 발을 그린 그림이다. 밭으로 소메통(오줌통)을 이고 나가는 뒷모습,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같이 그려 넣었다. 고생스러운 삶이 고스란히 각인된 무지외반증 발바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어머니 얼굴은 안아주려 반갑게 펼친 손처럼 부드럽고 머릿수건의 빛깔처럼 환하다.

이순신 장군이 긴 칼 옆에 차고 동상으로 서 있을 자리에 비를 들고 굳은 자세로 동상이 된 여성 청소노동자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고된 삶의 이력은 덕지덕지 파스로 붙어 옷 안에 감추어져 있을 여성 청소노동자에게도 또 다른 어머니를 대하듯 작가의 서러운 애정 가득한 시선이 묻어난다. 광화문 너머 무심한 구중궁궐 청와대가 대조적으로 보인다.

작가의 신작인 ‘황금모듈’과 ‘녹색모듈 2’와 같은 대작에선 파편화되고 소외됐지만, 필연코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보인다. 딱딱하고 무정한 컴퓨터 회로와 같은 세상에서 오롯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노동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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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경

밝은 색을 사용하거나 경쾌한 터치를 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서수경 작가의 그림은 따듯하게 마음을 적신다. ‘2019. 12월 7일. 용균 엄마’는 어느 행사의 행진 때 용균 엄마가 걷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아들을 잃고 푸른 슬픔의 바다에 빠진 듯한 모습이지만 저 멀리 앞에 보이는 걸 서슴없이 희망의 불빛이라 부르겠다.

‘창 6’과 ‘창 9’의 불빛도 더없이 따스하다. 낡고 누추한 집인데도 한 점 불빛이 더없이 안온하다. 하루를 어찌 보냈을지 모를 누군가가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쉬고 있을 것만 같다. 불투명한 창 안쪽으로 편안한 상상이 피어오른다.

‘퇴근’은 중년의 여성이 낮은 담벼락에 기대 한 줌 햇살에 위로받는 뒷모습을 그렸다. 비정규 여성 청소노동자를 그렸다 한다. 그이가 퇴근하며 벗은 것은 비단 유니폼만이 아니라 모욕의 하루, 고난의 하루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 그이를 어루만져주는 빛과 볕과 바람만큼은 또 누가 독점할 수 없는 것이겠다.

제목에서부터 경건한 애정이 담겨있는 작품이 바로 ‘단정한 살림’이다. 분명 노점을 나가거나 폐지라도 수거할 리어카를 그린 것인데 가난한 살림이 아니라 단정한 살림이라 명명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힘없고, 낮은 곳의 사람들이 지닌 그 품위와 강인함’을 그려냈다. 바람에 날리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제 자리에 단속해 놓은 야무진 손길이, 그 생의 의지가 리어카 바퀴의 붉은색처럼 뜨겁게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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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일

발달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그래, 엄마야’ 책에 실린 이선일 작가의 그림 중 다섯 작품이다. ‘길을 가꾸는 엄마’는 화분에 물을 주어 그늘을 드리울 나무를 길러낸다. 화분을 든 위치가 심장이고, 해서 가슴으로 키워낸 나무이며, 아이와 곰돌이 인형은 물론 다른 이들이 쉬어가기에도 충분한 그늘이다. 세상의 엄마는 ‘우리 함께’라는 길을 가꾸어낸다.

그런 엄마의 일상을 보면 아이가 잠든 시간을 틈타야 하기에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 부엉이처럼 ‘새벽 마실’을 가기도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집의 굴뚝엔 평화롭게 연기가 올라야 하고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놀아달라고 하기에 생각만 굴뚝같다. 정작 ‘그 자리에 엄마는 없다’

‘그 자리에 엄마는 없다’ 카페라테 잔에서 우유 거품만 떼어놓은 것 같은 둥실 구름 위에 앉아있는 것이 ‘나와 마주하다’ 그림이다. 모든 것이 둥둥 뜬 허깨비만 같고 거꾸로 비친 허상만 같다. 앞에 놓인 희미한 운전대를 잡기엔 모든 기력이 빠져버린 모습이다. 엄마가 늘 천하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래도 엄마다. 엄마가 미는 수레엔 아이만이 아니라 차곡차곡 빼곡하게 삶의 무게가 실려 있고, 치워도 닦아도 끝이 없는 일상이 그림자처럼 매달려 있지만. 도움은커녕 비난의 손가락질이 태반인 세상에서 자주 푸념하고 때론 울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용기 내어 날아갈 듯 달려간다. 연을 띄워 날리는 아이와 서로 다독이며 또 더불어 성장하며 ‘살아있는 날들의 하늘’을 푸르게 푸르게 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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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사군자로 일컫는 매화, 난초, 국화, 소나무는 문인화의 대표적인 화목이다. 정정엽 작가가 선보이는 ‘살림의 사군자’는 제목부터 재치 있다. 고결하고 우아하게 사군자를 치는 대신 입에 들어갈 먹을 것을 그리는 것이 하급일까, 우리에게 묻는다. ‘살림의 사군자 – 달래’의 긴 잎은 춤추는 듯하고 흰 알뿌리는 아름답기까지 하니 난에 비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알싸하고 아린 느낌의 죽비를 맞는 듯하고, 작가의 덧붙인 글대로 ‘심봤다’의 심정이다. 외계 생명체 같은, 싹 난 감자는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묵찌빠’라도 하자고 덤벼들 것 같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것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며 싹이 나는 것이 본성인 생명체 그대로를 보여준다. 꽃이 핀 양파와 파도 그러하다.

‘seed44 red bean’ ‘seed45 green bean’은 팥과 녹두의 그림이다. 그대로 씨앗이고 곡식이고 알곡이고 생명이다. 고스란히 땀방울이고 정성이고 생산이고 노동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는 대지와 농사와 살림이 넓고도 깊게 함께 떠오른다. 실천적 고민을 동반하는 여정으로 여성을 배반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삶에 기반한 예술을 펼치는 정 작가는 광화문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로 타올랐던 사람들을 형상화한 ‘촛불콩 7’의 여실한 콩알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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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노동의 세계에서 피워 올리는 꽃

한 작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눈 떠서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잠이 들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립니다. 그림을 많이 그리느라 ‘산재 노동자’의 아픈 어깨로 찡그리며 자는 날이 많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레 그림을 그린 날은 자면서도 빙그레 웃는다고, 그이의 배우자가 말합니다. 여러 다른 일에 치이며 그림을 그리지 못한 날은 잠든 낯빛조차 밝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림만 그릴 수 있는, 그래도 행복한 작가의 경우입니다만 창작의 세계 역시 그렇게 치열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영합하는 작품이 아니라서 더욱이 그러합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 맹렬하게 집중하는 시간, 지우고 더하는 붓질로 섬세하게 마무리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렸냐는 질문에 자신의 나이만큼 들었다는 어느 작가의 답변을 떠올립니다. 작품에 혼을 담는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타협 없는 삶을 살아내는 작가들의 귀한 작품입니다.
창작이라는 지난한 노동의 세계에서 피워 올린 꽃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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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작품은 구매 희망자에게 작품가를 안내해드리고,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 실물을 보실 수 있도록 작가와 약속을 잡고 동행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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