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이었다. 집 마당에 닭이 있었다. 얼룩 닭과 흰 닭이었다. 얼룩 닭이 흰 닭 등어리를 가차 없이 쪼아대는 걸 보았다. 싸움은커녕 도망도 못 치고 일방적으로 당하던, 쭈그려 앉은 흰 닭의 양 날갯죽지 가운데로 붉은 핏빛이 선연하게 번져가던 걸 기억한다.
맨드라미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얼룩 닭의 그 볏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닭은 닭이고 맨드라미는 맨드라미로 분리해 보게 됐다. 맨드라미도 그저 한 떨기 꽃이었다. 이런 꽃 저런 꽃,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간직한 꽃일 따름이었다.
사람도 모두가 오롯이 소중한 사람일 뿐이다. 그 소중함을 억압하는 교육과 문화와 관습과 법에 맞서야, 차별의 세상에 저항해야 또 사람이다. 이윤엽 작가의 ‘미안해 너구리야’에 담긴 마음. 개에게 쫓겨 떠난 너구리를 감나무 아래 묻어주며 미안하고. 밤에 그 무덤가까지 찾아온, 함께 쫓겼던 또 한 마리의 너구리를 보며 더 슬퍼지는 마음. 그런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다.
이렇게 참사람으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별을 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담쟁이를 닮아있기도 하다.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담쟁이,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 담쟁이 말이다. 그런 담쟁이는 온몸이 길이고, 종국에 들불로 번져갈 촛불에도 온 들판이 길일 터이다.
상흔의 강과 바다를 건너는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마침내 절망의 벽을 넘어서는 길 위의 동행으로 살아가자고 손 내민다. 때론 상심도 하는 우리 가슴에, 순간 좌절도 하는 서로의 가슴팍에 그래도 희망의 꽃송이 고스란히 안긴다.
비바람 속 ‘마지막 잎새’와도 같은 생명력의, 류연복 작가 담쟁이 잎사귀를 전한다. 함께 행복한 날로 피워낼, 이윤엽 작가의 이런 꽃 저런 꽃을 송이송이 건넨다.